뭄미우스 (Lucius Mummius) 에 의해 파괴되었다. 그 후 백 년 동안 휴면 상태에 있다가, BC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 속국으로 재건되었다.3) 고린도 재건 이유에는 아마도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. 첫째, (스트라보가 언급했듯이) 고린도의 상업을 위한 전략적 위치가 도시의 재건을 서두르게 했을 것이다. 모든 경제 활동에 필요한 요소들이 이곳에서 가능했다. 즉 아크로폴리스는 천예의 방어벽이 되었고, 수원지로부터 적절한 물이 공급되었고, 로마와의 관계, 동서 상업을 잇는 두 개의 만을 관장했으며, 올림픽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던 이스미안 (Isthmian) 경기들을 주관했다 (9:24~27을 보라). 둘째, 스트라보 (8.6.23c) 에 따르면 고린도는 로마 자유인들로 인해 인구 밀도가 급격히 높아졌다. 지위가 노예보다 높았던 자유인들로4) 인해 로마의 인구가 종종 과잉되었다. 자유인들의 이주가 한편으로는 로마가 가진 잠재적 문제를 해결하는 손쉬
Page 36